[여행의 향기] 쪽빛 품은 신수도, 옛집 툇마루는 그대로인데…'느림'을 배웠던 그 오솔길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입력 2017-10-09 15:44  

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7> '삼천포 명품섬' 신수도



삼천포항에서 여객선으로 10분 거리. 신수도는 훌쩍 뛰면 건널 수 있을 듯 뭍에서 가까운 섬이다. 2011년 봄 처음 신수도에 갔다. 그때 섬은 기대에 들떠 있었다. 행정안전부 ‘한국의 명품 섬 BEST 10’에 선정돼 25억원을 지원받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섬사람들의 명품 섬 개발에 대한 기대는 컸다. 하지만 개발의 바람을 비켜간 신수도가 나그네의 눈에는 이미 그 자체로 명품 섬이었다. 그런데 또 무슨 명품 섬 사업이 필요할까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6년 만에 나그네는 다시 신수도를 찾았다. 밭에 김매러 가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명품 섬 하고 나서 신수도가 좋아졌습니까?” 돌아오는 대답이 단호하다. “좋아지긴 뭐가 좋아져. 암것도 한 거 없지 뭐.” 밭에서 일하는 다른 주민들도 같은 대답이다. “돈이 썩는다 케나. 한 바퀴 휙 돌아빌고 나가뿌요.”


섬 발전에 도움 안 된 명품 섬 사업

명품 섬 사업이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들어선 것은 섬 일주도로였다. 당시 섬에는 자동차가 한 대도 없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섬에는 주민의 자동차가 딱 한 대뿐. 섬 일주도로는 관광객 유치를 명분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잘 깔린 도로 덕에 정작 관광객들은 자동차를 타고 들어와서 한 바퀴 휙 돌아보고 바로 나가버린다는 말씀이다. 왔다 금방 나가버리니 관광객 증가가 섬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관광객이 와 봐야 도선비만 보태주는 거지. 섬에 돈 쓰고 갈 일이 없어.” 차를 가져오는 관광객들이 결국 여객선사에만 이익을 주고 간다는 뜻이다. 명품 섬 사업이 결국 신수도 관광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섬 일주도로라고 해봐야 5㎞밖에 안 된다. 자동차로는 겨우 10분 거리다. 그러니 자동차를 타고 들어온 관광객들은 한 바퀴 휙 돌아본 뒤 돈 한푼 안 쓰고 바로 섬을 떠나버린다. 도로가 관광객을 머물게 하는 게 아니라 쫓아내는 도로가 된 것이다. 5㎞는 걸어도 한두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니 섬 트레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확·포장되기 전 신수도의 오솔길은 더없이 정겹고 아름다웠다. 그 섬길을 살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국 신수도 명품 섬 사업은 명분과는 달리 섬사람들에게 별다른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예산만 낭비하고 섬을 망쳐버린 정부의 개발 사업이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 부처들은 여전히 비슷비슷한 관광개발 사업에 돈을 쏟아붓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방파제 생기면서 갯벌 사라져

신수도 주민들의 주업은 밭농사다. 봄에는 고사리가, 가을에는 고구마가 중요한 수확물이다. 봄 고사리는 피해볼 일이 없지만 여름을 나야 하는 다른 농작물은 태풍이나 큰바람을 맞으면 피해가 크다. 그러나 고구마는 땅속에 있어 안전하다. 섬에 고구마밭이 많은 이유다. 이 아름다운 섬에 와서 해변의 풍경과 고구마와 콩과 참깨가 자라는 것을 보며 느리게 걸어간다면 그보다 더 큰 휴식이 어디 있겠는가. 도로가 넓어질수록 섬의 볼거리는 줄어든다. 이 작은 섬에서 자동차를 타고 간다면 대체 섬의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을까.

신수도 본동인 큰 마을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도시의 어느 오래된 동네 같다. 마을 위 언덕은 모두가 곡식을 키우는 밭이다.


“저 방파제가 문제요.” 길을 가다 만난 사내는 마을 앞 방파제를 손가락질한다. “저 방파제를 안 막았을 때는 저 앞이 게 엄지발가락 모양이었어요. 땅이 길게 튀어나온 것이 바깥 것들 물어들이는 게 집게발 모양이었거든. 그래 부자 섬이었지. 돈 섬이라고도 했으니까.” 그런데 방파제를 막으면서 게의 집게발 모양의 땅이 잘려버렸다. 그다음부터 섬이 가난해지기 시작했다고 사내는 믿는다. 바깥에서 재물을 집어 오던 집게발이 없어졌으니 재물이 굴러다녀도 집을 방법이 없어 섬이 가난해졌다는 것이다.

바다 오염과 어업 기술의 발달로 어자원이 고갈되면서 신수도의 어업도 쇠퇴했다. 게다가 마을 앞 갯벌이 매립되면서 황금의 조개밭마저 사라져 버렸다. 더 이상 신수도 사람들은 바다에 의지해서 살아갈 수 없게 됐다. 그것이 섬이 가난해진 이유일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자신들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으니 어떤 초자연적인 데서 그 원인을 찾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섬의 쇠락도 게 집게발가락이 사라진 때문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명품 섬이라고 텔레비전에 나가고 나서 외지 사람들이 많이 와요.” 그 외지인들이 벌써 섬의 땅을 많이 사버렸다.

명품 섬으로 지정해서 국가 예산을 투입하니 개발업자나 외지 부동산 투기꾼들이 먼저 눈독 들였던 것이다. 섬이 투기꾼들의 먹잇감이 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뛰어난 품질의 신수도 죽방멸치

신수도는 많지 않은 사천의 섬 중 가장 크다지만 면적 1.01㎢의 작은 섬이다. 옛적에는 침수도(沈水島) 혹은 신두섬이라 했다. 신수도는 한때 1500여 명까지 살았을 정도로 은성했던 적도 있지만 이제 신수본동과 대구마을 두 마을에 137가구 360여 명만이 살아가는 한적한 섬이 됐다. 신수도는 죽방렴으로 유명한 남해 지족해협과 가깝다. 지족해협의 죽방렴에서 잡힌 죽방멸치는 금값이다. 신수도 인근 바다에도 언뜻 죽방렴과 흡사한 형태의 멸치 어장이 많다. 대구마을 해안가에도 죽방렴이 있다. 그런데 어째서 신수도 죽방멸치는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마침, 어느 집 마당에서 노(老)어부 한 분이 어구 손질을 하고 계셨다. 노인은 창선도가 고향이다. 50년 전 멸치어장 때문에 신수도로 이주해 왔다. “어르신, 여기도 죽방렴을 하네요. 멸치값이 비싸겠어요.” 죽방렴에 대해 아는 척을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 “여기 죽방은 혼죽방이 아녀.” “혼죽방이라니요?” “진짜 죽방이 아니라고.” 무슨 말씀이신가. 이 근방의 죽방렴은 진짜 죽방이 아니란다. 삼천포 앞바다의 죽방렴처럼 보이는 모든 멸치어장이 죽방렴이 아니란 말씀이다. 진짜 죽방렴은 남해 삼동면과 창선면 사이에 있는 지족해협에만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죽방렴이란 대나무를 엮어 만든 그물, 혹은 대나무 통발이라고 보면 된다. 참나무 말뚝을 브이(V)자로 박아 나열하고 그 안에 대나무로 그물을 엮어 물고기가 들어오면 V자 끝에 설치된 통발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서 잡는 어법이다. 주로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물살이 세고 수심이 얕은 곳에 설치한다. 지족해협의 죽방렴은 조선 예종 때의 문헌 《경상도속찬지리지》에도 그 기록이 남아 있는 500년 이상 이어온 전통 어법이다. 죽방렴에서 잡힌 물고기는 신선도가 높아 고가에 거래된다. 그렇다면 죽방렴을 닮은 저 멸치어장은 뭘까? 물고기를 잡는 원리는 죽방렴과 같다. V자로 말뚝을 박는 것도 같다. 다만 그 안을 대나무발이 아니라 나일론 그물로 채우는 것이 다르다. 그러니 죽방렴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또 하나의 의문이 풀렸다. 하지만 멸치는 죽방렴과 같은 방식으로 잡는다. 게다가 값은 말할 수 없이 저렴하지만 맛은 뛰어나다. 죽방렴 아닌 죽방렴. 신수도 바다가 주는 선물이다.

고목 아래 낡은 집에서 사는 팔순의 할머니

신수 본동 큰 마을, 낡은 집 툇마루에 할머니 혼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계신다. 마당을 기웃거리는데 할머니가 들어오라 손짓한다. 집 울타리 밖에는 오래된 고목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고목 아래 낡은 집, “할머니 집이 운치가 있는데요. 고목나무도 있고 여름에 그늘 덕에 시원하시겠어요.” “아이고 하나도 안 좋아요. 떨어진 나무 이파리가 썩어서 날파리랑 지네도 많고 나부(나비), 꺼무나부, 힌나부도 많고 뱀도 많아요.” 할머니는 지네에 물려 퉁퉁 부은 발등을 보여주신다. 고목나무 주변에도 숲이 울창하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 사는 데는 고역이다. 팔순의 할머니 혼자 사시니 집 주변의 나뭇잎을 치우거나 풀을 베어내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전에는 나무 해 때고 풀도 베고 그라께네 깨끗했는데 이제는 풀밭이 많으니 벌레도 많고.”

예전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고 할머니도 젊을 때는 늘 주변을 관리하니까 집 주변이 깨끗했다. 나뭇잎이 쌓일 틈도 없었다. 그러니 그때는 마루에서 잠을 자도 벌레에 물릴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루에서 잠자기가 무섭다. “나무가 썩어서 덮어져 있으니 짐승이 안 끓겠나. 바글바글합니다.” 약을 많이 뿌려도 소용없다. 근본적인 처방이 없으니 집에 약을 뿌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작년에는 구랭이가 많이 뵈더니 올해는 독사 새끼들이 많이 나옵니다.” 뱀이 집 마당까지 들어오기도 한다. 나그네처럼 속 모르는 사람들은 집의 겉모양만 보고 좋아서 감탄을 하기도 하지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죽음 앞에 초연한 섬할머니 가슴 먹먹

“외지 사람이 와서는 이런 집 처음 본다고 그러면 내가 생전 처음 보면 많이 보라 그래.”

그래도 할머니는 이 집에서 혼자 사는 게 편하다고 한다. 이런 탁 트인 데 살다가 시내 가면 못 살겠다. 할아버지는 진주가 고향이었다. 결혼해서 진주에 살다가 할머니의 고향 신수도로 들어와 배를 부리며 살았다. 할아버지는 20년 전에 세상을 떴고 자식들은 삼천포에 산다. 자식들 집에 가면 서로 조심해야 해서 마음이 불편하다. 낡고 벌레 들끓는 집일망정 내 집이 편하다. “뒤비자든가 말든가 맘대로 해서 편코.”


물이 귀한 섬에 살다보니 예전에는 저 산 너머 웅덩이까지 날마다 물을 길으러 다니곤 했다. 물 길어 이고 오면 한 시간도 더 걸렸다. “산에서 나무도 해다 때고 아휴 어치 살았는고 모리겠다.” 물 길어다 밥해 먹고 산에서 나무 해다 불 때고, 밭일 하고, 갯벌 가서 조개 캐고. 밥 먹고 사는 일이 생활의 전부였다. “지금은 만고 편치. 수돗물도 잘 나오겠다. 전에 산기 하도 억울해서 쪼끼 더 살면 싶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병들어 자식들 고생시킬까봐 걱정이다. “나이 먹을수록 목욕도 자주 해야 냄새도 안 나지. 전에 산 거로 생각하면 더 살면 싶은데, 구겡도 하고 여행도 댕기고 애 터지게 벌어갖고 그리 사는 기지.” 어렵게 살았던 삶이 억울해서 할머니는 더 오래 살고 싶지만 어차피 오는 죽음 편안히 맞이하고 싶은 바람 또한 크다. “사는 게 사는 걸까요. 안 죽으니께 산다고.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자는 참에 소롯히 가삐리면 좋겠다.

그기 편치.” 죽음 앞에 초연한 듯한 할머니의 말씀이 하도 쓸쓸해 나그네는 길 가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아릿하다.

강제윤 시인은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섬 답사 공동체 인문학습원인 섬학교 교장.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통영은 맛있다》《섬을 걷다》 바다의 노스텔지어, 파시》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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